[의정단상] 나는 회의(懷疑)한다
[의정단상] 나는 회의(懷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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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았다. 1987. 매캐했던 기억 저 너머의 일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1987년. 민주주의다운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에 뿌리내리기까지 억울하게 희생된 안타까운 젊음들이 있었음을 두 시간 내내 아픈 가슴으로 목도했다. 그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오늘까지 발전할 수 있었고, 그러한 역량이 쌓이고 쌓여서 수많은 촛불로 타 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때 당시 민주화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군부정권의 독재정치였지만, 그 장약은 누가 뭐래도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 아니 419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시민의 성숙한 역량. 이렇듯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온 것은 이름 모를 필부필부(匹夫匹婦), 그 시절을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이었다는 것이다.

대학생이었던 지성인들은 학교 앞 거리에서, 이미 졸업을 하고 직장인이 된 시민들은 넥타이부대가 되어, 데모를 할 수는 없었지만 묵묵히 시위대를 응원했던 수많은 사람들, 이름 모를 이들의 마음이 모이고 모여서 우리 국민은 그렇게 1987년을 살아냈고,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2018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랬던 수많은 주역들은 이미 오래전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말없이 돌아갔다. 그중에 일부는 386 젊은 피가 되어 정치권에 발탁이 되었고, 그들이 바쳤던 젊은 날의 보상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했다는 것을 따질 수는 없겠으나, 그들에게 많은 보상이 주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국민의 것이다. 특정 정파의 업적이나 유산이 아니라 1987년을 묵묵히 살아냈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것이다. 현 정부는 당시의 주역들이 중책을 맡아 참여하고 있다. 집권당의 원내대표가 그렇고, 청와대의 비서실장이 그러하며, 다수의 장관, 다수의 의원이 그러하다. 1987년의 주역들이 주류가 된 정부. 그런데도 역시나 국민들은 어렵다.

그들은 화려해졌다. 더 이상 떼 묻은 빛바랜 사진 속 그 얼굴은 이제는 없다. 그들의 말과 의복이 화려해질수록, 소위 관록과 경륜이 쌓여갈수록 그때의 초심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닳고 낡아질 것이다. 국민들의 삶은 그들이 적폐라고 내모는 전 정부 때 보다 더 안 좋아졌다는 여러가지 수치들도 들린다. 행복지수도 더 낮아졌다고 한다. 바라던 그 세상은 왔는데 국민들은 역시나 어렵다.

그때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은 시민들이었고, 촛불로 광화문광장을 밝힌 사람들도 국민이었다. 특정인의 공이 아니었다. 1987년과 촛불을 계승하는 정부. 그들은 인생의 최고 전성기인데 국민들은 어렵다. 그래도 국민들은 2018년을 살아갈 것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2018년도 살아낼 것이다.

국민들이 영악하지 못하거나 계산에 둔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이 땅 대한민국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낼 것이다. 주인은 내 조국의 위기나 어려움을 이용해 자기가 빛나고자 하는 마음도 의도도 없다. 그러기에 국민들이 진짜 주인이다.

정치인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교섭단체도 되지 않는 작은 바른정당의 일원이 되어, 더 바람직한 정치, 더 올바른 개혁의 방향을 찾고자 동문서주 하며 회의(懷疑)한다. 나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나라를 위한, 국민을 위한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물으며 회의(懷疑)해 본다.

매일매일 회의(懷疑)의 회의(會議)를 거듭하며 또 회의(懷疑)하고 회의(會議)한다. 주인이 일을 맡긴 청지기로서의 정치인, 그러나 그 생각과 마음가짐이 주인다운 정치인, 그런 정치인이 되고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정치의 길을 걸어가고자 매일을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 또 회의(懷疑)한다.

유의동 국회의원(바른정당·평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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