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에 빠져있는 농촌
시름에 빠져있는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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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 붕괴직전이다. 38조원에 달하는 농가부채와 치솟는 기름값, 곤두박질치는 농산물 시세 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시꺼먹게 타들어가다 못해 영농의욕을 상실한채 농촌을 떠나는 사태로 까지 이어지고 있다.



농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부채는 지난 90년 8조3천600억원에 달했던 것이 95년에는 13조7천500억원, 97년 18천301억원, 올해 38조원으로 10년전인 90년에 비해 4배이상 늘어난 상태다.



여기다 경기침체로 인해 극도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 농촌경제가 회생불능의 지경으로 까지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농산물 가격 하락세는 기업 구조조정 등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시설재배 농민들은 정부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농촌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농가파산은 물론 회생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며 시름에 잠겨 있는 실정이다.<편집자주>











“기름값이 너무 올라 도저히 감당을 못하겠습니다. 요즘은 ‘더 버틸 것인지 아니면 시설재배를 포기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중입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누렇게 얼어죽은 호박넝쿨을 매만지던 박명철씨(43·평택시 진위명 야망리) 부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멀리서 바라본 평택시 진위면 야망리 탁 트인 들녘에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야채와 채소를 키우는 600여개의 비닐하우스가 쫙 널려 있어 그 모습이 장엄하기 까지 했다.



야망리 주민 30가구가 기름진 땅심에 기대어 비닐하우스 600여동을 짓고 고추, 호박, 오이, 방울토마토 등 온갖 채소와 야채 등을 기르며 부농의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밀집된 비닐하우스 한 가운데 소로를 지나는 동안 여기저기 비닐하우스에서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름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난방을 위한 면세유값 부담이 IMF이후 갑절이나 늘어난 탓이다.



현재 농업용 면세유가격은 1ℓ당 48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으로만 비교해도 340원에 비해 무려 25% 정도 올라 겨울난방비가 생산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겨울철 비닐하우스 농가는 사용할 엄두고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비닐하우스 18개동 3천평에 호박을 심은 박씨는 “기름값이 워낙 치솟아 타산을 맞추기 위해 8개동의 난방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호박은 섭씨 15도를 유지해야 하는 고온작물이어서 난방비가 많이 들어간다.



요즘 비닐하우스 10개동 1천500평에 심은 호박의 하루 난방을 위해서는 자그마치 40만원(4드럼 200ℓ)이 소요되고 있다.



하지만 호박 1상자(20개) 가격은 한달사이 2만원대에서 9천∼1만원대로 절반가량이나 뚝 떨어졌다.



생산비는 큰 폭으로 오르고 상품은 오히려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타산을 맞추기 위해 규모가 큰 8개동 1천500평의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보일러를 꺼 피땀흘리며 키워온 호박이 얼어죽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나머지 10개동 비닐하우스 온도도 기름을 아끼기 위해 최저온도인 13도로 유지해 놓고 있다.



수확해 팔아도 손해가 분명한데도 차마 이마저 얼어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박씨는 이번 호박농사에서 기름값, 볏짚값, 비료값 등으로 생산비 1천만원과 인건비 800만원이 투입했지만 출하해 얻은 수익은 현재 800만원에 불과, 내달까지 1천만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씨는 “난방을 계속하자니 생산비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름값이 걱정이고 아예 포기하자니 고생한 것이 안타깝고…”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올 봄에도 비닐하우스 10개동에 오이를 심었다.



오이도 섭씨 13∼17도를 유지해줘야하는 고온작물이어서 난방비가 호박보다 많이 든다.



출하가 시작된 3월에는 오이 1박스(100개)에 2만5천∼3만원으로 수지가 맞았으나 한달만에 1만2천∼1만3천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생산비 2천만원과 외국인노동자와 가족 3명의 인건비 1천만원 등 3천만원이 투입됐으나 출하로 얻은 수익은 1천600만원에 불과했다.



오이농사로 1천400만원의 적자를 본 셈이다.



“그 당시엔 비닐하우스를 엎어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호박농사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오이넝쿨을 걷어내고 호박을 심었지만 역시 기름값과 농산물시세의 불안정으로 막대한 손해만 입었을 뿐입니다”라며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만 길게 내뿜었다.



박씨는 지난 98년 부농의 꿈을 키우기 위해 1억5천만원을 10년상환 조건으로 융자받아 비닐하우스 18개동 3천여평을 지었다.



현재 3년째 시설재배을 해온 박씨는 원금은 커녕 이자도 못갚은채 매년 영농자금을 1천600만원씩 2차례나 받아 현재 빚이 1억8천만원에 달하고 있다.



매년 수확하는 호박·오이의 수익으로 대출받은 영농자금의 원금은 갚지못한채 이자만 갚고 있으며 그나마 갚지 못할때도 있어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기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는 12월이면 이번 호박농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1월께 다시 오이농사를 시작할 마음이지만 3년째 적자만 내다보니 선뜻 오이농사를 지어야할 지 망설여지고 있다.



박씨는 “여태까지 날씨가 포근한 편이어서 그나마 부담이 적었는데 내달부터 한파가 찾아오고 기름값이 또 오른다니 걱정스럽기만 하다”며 “더구나 유가급등으로 인해 비닐값, 비료대, 자재값도 덩달아 오를 것으로 예상돼 막막하기만 하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박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마을 30여농가의 사정도 다를바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동네에서 매년 시설재배를 그만두고 인근 공장의 경비나 도시로 날품 팔러 가는 사람이 2∼3명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박씨의 모습에서 부농의 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농사짓기가 이렇게 힘들어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반문하는 박씨의 질문에 농촌의 암담한 현실이 짙게 묻어나왔다./이관식기자 ks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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