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_ 한ㆍ베트남 수교 20년 특집 인터뷰] ‘베트남 드림’ 이룬 한국인 박찬우 ㈜한나 대표
[특집 _ 한ㆍ베트남 수교 20년 특집 인터뷰] ‘베트남 드림’ 이룬 한국인 박찬우 ㈜한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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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제게 기회의 땅, 그 이상입니다”

베트남 제1의 도시인 호치민시에서 북서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구찌시에 종이박스공장과 생수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찬우(51) (주)한나 대표.

유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박 대표는 1960년대 우리 군(軍)의 첫 해외 파병지인 베트남의 종전 이후, 지난 1992년 12월 한국과 첫 수교를 한지 3년 후인 1995년 호치민 대표팀의  유도 코치로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현지 여건이 맞지 않아 지도자 활동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는 유도 코치를 그만둔 뒤 박스공장에 취업해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듬해 자본금 6천만 원으로 박스공장을 설립했다. ‘베트남에서 제2의 인생에 승부를 걸겠다’고 마음먹은 박 대표는 그해 8년 연하의 레티 미팅(43)씨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

박 대표는 초창기 언어 장벽과 문화의 차이 등 어려움을 극복하고, 특유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사업이 번창 할 무렵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원자재 부족이었다.

원지(原紙)를 사들여 종이박스를 제작하던 공장은 베트남과 인접한 ‘거대시장’ 중국이 홍수 등으로 인해 자국의 원지가 부족할 경우 베트남의 원지를 ‘싹쓸이’ 하는 바람에 3~4년 주기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때마다 박 대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기계는 멈출 수 없다’는 생각에 각지를 돌며 인간적인 호소 끝에 비록 비싼 가격이지만 원지를 구입하거나, 때로는 한국에서 직접 원지를 들여오는 등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해 단 한 번도  공장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공장은 나날이 성장했다. (주)한나에서 생산된 박스는 수출용으로 의류·가방 제조업체에 납품됐고, 월마트, 갭, 콜스 등 대기업이 주거래처가 됐다. 박스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박 대표는 현지 음용수 사정이 좋지 않은 점에 착안, 지난 2008년 박스공장에서 1시간 떨어진 곳에 생수공장을 설립했다.

박스 공장 첫발, 이젠 생수시장까지 진출…‘탄탄한 현지화’로 성공의 발판

생수를 새로운 주력 상품으로 생산하겠다고 마음 먹은 박 대표는 한국인 10만 명 중 8만 여명이 거주하는 호치민시에 판매되는 모든 생수를 수거해 모교인 경희대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그리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베트남 남부지역의 물 좋은 곳을 수소문한 끝에 호치민 인근의 생수원을 찾기에 이르렀다.

“우선 한국인을 상대로 판매에 들어가 마침내 ‘고향에서 맞보던 바로 그 물맛’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내며, 서서히 베트남 내수 시장을 점유해 가고 있다”는 박 대표는 “원자재 확보가 어렵고 마진율이 낮은 박스생산 보다는 이제 불과 4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최고의 물맛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생수를 앞세워 베트남 시장을 석권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박 대표는 현재 수백만 달러가 소요될 재투자 마케팅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베트남 정착 17년 만에 박스공장 3만5천㎡, 생수공장 9천㎡, 종업원 수 180명, 연 매출 70억여 원의 중견기업 CEO로 자리매김 한 박 대표는 성공 비결에 대해 “선수시절 힘든 운동을 견뎌냈던 오기와 자신감 하나로 오직 최선을 다하고, 진실성을 앞세워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베트남인들은 온순하면서도 때로는 다혈질적인 양면성이 있다”며 “처음에는 현지인들을 다루기가 힘들었지만 세상사 모든 일이 하기 나름 아니겠냐. 끊임없이 소통하고 신뢰를 쌓으니 직원들도 성실성으로 보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베트남에 정착해 사업을 시작할 당시 불같은 성격과 언어 문제 등으로 현지인 직원들과 자주 마찰을 빚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17년째 박 대표와 함께 일하고 있는 공장장 탄씨는 “사장님은 성격이 무척 급한 편인데 공장을 오픈한지 얼마 안 돼 제가 잘못해 뺨을 맞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를 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오히려 때린 사람이 너무 당당해 이해할 수 없었다”며 “그 때는 많이 서운하고 화도 났지만 같이 근무하면서 인간적인 면을 느끼고 보니 ‘아! 이 사람을 믿고 평생을 가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 사장님은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웃으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유도 선수시절 터득한 ‘흘린 땀의 양만큼 반드시 대가가 돌아온다’는 신념과 경영철학이 녹아들어 오늘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한편 사업가로서 안정가도에 오른 박 대표는 최근 자신의 전공분야인 스포츠계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베트남 교민들의 구심 역할을 할 체육회가 없다는 아쉬움을 항상 간직해 왔던터라 체육회 베트남지부(재베트남체육회) 창립을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지난 4월 발족한 재베트남체육회 창립준비위원회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 대표는 “아직 교민들의 참여가 부족하고 체육회를 이끌 수장을 영입하지 못하는 등 역부족이지만 반드시 재베트남체육회를 발족시켜 체육을 통한 교민들의 건강과 결속을 다질 수 있는 틀을 만들겠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오는 12월 한-베트남 수교 20주년을 맞아 교민과 현지인 등 3천여 명이 참여하는 걷기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박 대표는 “스포츠야 말로 교민 사회를 단결시키고, 모국과의 교류를 통해 양 국간 상호 우호를 증진시킬 수 있는 민간외교의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제2의 고향인 베트남에서 성공한 사업가와 영원한 체육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저에게 베트남은 ‘기회의 땅’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글 _ 황선학 기자 2hwangp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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