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효의 효심일까 소래산 남쪽자락엔 따뜻한 훈풍이 분다
문효의 효심일까 소래산 남쪽자락엔 따뜻한 훈풍이 분다
  • 윤철원 기자 ycw@ekgib.com
  • 노출승인 2010.12.07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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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소산서원
토지의 비옥한 정도에 따라 토지를 6등급으로 나누고, 그 해 풍흉(豊凶)의 정도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눠 세금을 매기는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 국사교과서에서 세종의 훌륭한 업적으로 줄을 쳐 가며 외웠던 공세법(貢稅法)이다. 하지만 이를 고안한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황희, 허조와 함께 명재상으로 일컬어지는 경재(敬齋) 하연이다.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함은 문(文)이요, 자혜하고 어버이를 사랑함은 효(孝)이다’해서 ‘문효’(文孝)라는 시호를 받은 하연. 소래산 남쪽 자락에는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소산서원(蘇山書院)이 자리하고 있다.

■ 서원 화장실이 언다(?)

수인산업도로와 서해안로가 교차하는 시흥시 신천동 소래산 남쪽 자락. 한겨울을 의미하는 대설(大雪)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인지 소산서원을 찾은 지난 4일은 영하의 날씨에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이날 취재는 다른 날과는 달리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실에 있는 최정준씨와 함께 동행했다. 그의 전공이 조선의 유교인지라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은 느낌이었다. 서원 앞은 넓은 주차장이 마련돼 있었고, 홍살문은 보이지 않았지만 ‘입정문’(入正門) 현판이 걸린 외문이 보였다. 소산서원의 외문은 삼문 형식이 아닌 중앙에 대문이 있고 양쪽으로 창고같은 텅빈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자 전면 5칸, 측면 3칸의 커다란 강당이 나타났다. 강당 양 옆에는 동·서재가 세워져 있다. 만나기로 한 하용환 진양하씨문효공파중앙종친회 사무국장을 기다리며 안을 살펴보고 있는 동안에도 소래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이곳 주민들에게 서원은 상당히 친근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 국장이 나타나서야 하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당의 현판은 하연의 시호를 따 ‘문효사’(文孝祠)라 적고 있다.

소산서원은 1455년(세조 1년) 소산재로 창건됐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며 소실됐다. 이후 1996년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다시 세웠고, 1995년 중건하면서 명칭을 소산서원으로 바꿨다. 현재는 진양하씨문효공파종중에서 소유·관리를 맡고 있다.

서원을 둘러보고 자세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하 국장이 안내한 곳은 강당 안이었다. 강당 내부는 중앙에 대청마루가 넓게 펼쳐져 있고 양옆으로 온돌방이 배치돼 있었다. 온돌방으로 통하는 문은 위로 젖힐 수 있어서 보다 넓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서원에서는 넓은 강당을 이용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중 효·예절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고려말 충신인 정몽주의 문인
성리학 이념에 입각한 국가정립
불교의 권세적 폐단 바로잡고자
불교 7종파를 선·교 36본산 통합
대이은 지극한 효성으로도 유명

방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지금껏 다녀 본 한기 서린 강당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겨울만 되면 난방이 안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타의 서원들과는 달리 이곳은 겨울나기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하 국장의 ‘어처구니’ 없는 말에 기가 찼다. 겨울에는 화장실이 얼기 때문에 교육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 화장실이 없어 이 좋은 공간을 놀려야만 한다는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얼마전 시흥시가 소산서원 일대를 효문화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물론 공원조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서원을 활용하는데 있어 최소한의 기반시설부터 갖추는 것이 우선순위이지 않을까.

■ 하연의 代이은 효심

서원 뒤 소래산 중턱 기슭에는 하연의 묘가 있다. 묘는 북쪽에 소래산이 막아주고 동남서쪽으로 훤희 트여 신천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 국장에 따르면 풍수적으로도 무공단좌형(武公端坐形)으로 후세에 인재 부귀가 끊이지 않는 명당지라 했다. 묘역을 중심으로 앞 중앙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으며, 우측에 묘비, 좌측에 장명등, 좌우에 문신석인과 석양(石羊) 한 쌍이 배치되어 있다. 묘는 정경부인 성산 이씨와의 합장이다.

하연은 고려말 충신인 정몽주의 문인이다. 21세에 벼슬에 올라 이조판서, 대제학,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주요 업적으로는 1423년(세종 5년) 대사헌으로 조계종 등 불교 7종파를 선(禪)·교(敎), 36본산으로 통합하고, 혁파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는 국가로 환수했다. 이것은 고려시대 국교로서 많은 권세와 폐해를 낳았던 불교의 폐단을 바로잡고, 성리학의 이념에 입각한 국가를 세우고자한 뜻이었다.

또 하연은 효성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하다. 당시 사관이 하연의 부음을 전한 졸기에 “두 어버이가 모두 나이 80세인데, 무릇 그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면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효성스러운 면을 보였다.

하연의 묘 아래에는 셋째 아들이자 조선 전기의 대표적 효자로 이름난 하우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정각비가 있다. 하우명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는데, 아침 저녁으로 손수 조리한 반찬으로 상을 올렸고, 어머니 또한 아들이 직접 조리하지 않았을 때는 음식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하우명이 효행으로 이름 높은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지 않았을까.  윤철원기자 ycw@ekgib.com

■ 시흥시 향토유적 제11호 ‘하우명 효자정각’

호랑이도 감복한 지극한 효심

소산서원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11호인 하우명 효자정각이 있다. 조선시대의 효자 하우명의 효행을 기리고자 건립된 정각이다.


하우명은 1444년(세종 26년) 사헌부 감찰을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나,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향리에 은거했다. 그는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진지상의 반찬은 반드시 먼저 맛을 보고, 손수 조리한 것이 아니면 올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애통한 마음으로 제사 음식을 손수 마련해 3년상을 치렀다. 시묘할 때는 묘 앞에 석등을 설치하고 밤새도록 등불을 밝혔다. 하루는 등불이 꺼지고 등잔이 넘어지자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탄식했다. 이튿날 묘 주위를 살펴보니, 붉은 여우 한 마리가 등잔의 대석(臺石) 앞에 죽어 있었다. 그 곁에 호랑이 한 마리가 걸터 앉아 제사를 마치고 그가 그 음식을 주면 먹고, 다시 와서도 해롭게 하지 않았다. 그의 효심에 호랑이도 감복한 것이다.

일찍이 거위와 오리를 길러 제수(祭需)에 사용하려 했는데, 하루는 호랑이가 갑자기 거위를 물고 갔다. 하우명은 “이것은 내가 조상의 제사에 쓸 물건인데 호랑이가 비록 짐승이긴 하나 어찌 내 마음을 몰라주는가”하고 탄식했다. 그 일이 있은 후 3일만에 거위가 스스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의 효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3년상을 마친 후에도 하우명은 어머니를 추모했다. 어머니의 초상화를 모실 영당을 소래산 아래에 세우고 계절에 따라 새로운 제수를 받들어 제사를 지냈다. 또 “우리 부모님께서는 평소에 아이들과 같이 식사를 해야 배가 부르다고 하셨다”며 먼저 죽은 형제자매의 신위(神位)를 같이 배치해 제사를 지냈다.


<인터뷰>  하용환 진양하씨문효공파중앙종친회 사무국장

“하연의 孝·애민사상 전파… 당국의 조속한 지원이 절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예절교육 예약이 거의 꽉 찹니다. 지역 학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화장실 문제로 겨울에는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지난 8년동안 직접 입주해 소산서원을 관리해 오고 있는 하용환 진양하씨문효공파중앙종친회 사무국장. 그는 1년에 한 번 제향때만 열리던 서원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수북이 쌓인 먼지를 닦아 내고, 노화된 시설을 보수하면서 꿋꿋하게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해 나갔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인지 사람들이 잘 안왔어요. 고작해야 주말에 등산객들이 전부였죠. 시간이 지나자 학교나 유치원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현장학습을 오고 싶다고요.”

그의 노력 덕분에 서원이 진행하고 있는 예절교육은 상당히 활성화됐다. 학교는 물론이고 사회단체뿐 아니라 기업체에서도 문의가 올 정도라고 했다.

하 국장은 “단지 화장실 문제 때문에 주민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없어 안타깝다”며 “시흥시가 서원의 이같은 현실을 바로 알고 빠른 시일내에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 국장이 아쉬워 하는 또 한 가지는 사람들이 황희는 잘 알지만 그에 버금가는 하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연 선생은 전분 6등·연분 9등법이라는 합리적인 공세법을 만들어 백성들의 시름을 합리적으로 덜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분입니다. 이 분에 대한 연구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가 하연에 대한 보다 풍부한 스토리 텔링을 만들어내기 위해 학술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는 이유다.

하 국장는 “학술 세미나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하연 선생의 새로운 면모가 밝혀지길 바란다”며 “이를 바탕으로 서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연 선생의 효와 애민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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