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 임양은 본사주필 yelim@ekgib.com
  • 입력   2010. 04. 14   오후 9 : 34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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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정조는 조선 왕조에서 쌍벽을 이루는 성군이다. 조선조 전기에서 세종을 꼽는다면 후기엔 정조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임금의 리더십은 다르다. 역사 학자들은 세종을 계몽군주로, 정조는 개혁군주로 분류한다. 즉 세종은 평화로운 치세의 성군인 데 비해 정조는 어지러운 난세의 성군인 것이다.

두 임금의 즉위 배경이 구분된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아들 세대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본 구세력을 미리 다 숙청했다. 심지어는 아들의 장인인 심온마저 제거했다. 반면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 사후 14년 동안 또 무슨 변고가 닥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지내다가 보위에 올랐다. 치국의 콘텐츠가 이래서 다르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백성을 어여삐 여긴 계몽군주의 소산이다. 정조의 서얼제도 타파 등 실사구시는 개혁군주의 소신이다.

그러나 같은 점도 있다. 세종이 영의정으로 중용한 황희는 태종의 양녕대군 폐세자, 즉 나중에 세종이 된 충녕대군 자신의 세자 책봉을 귀양 가면서까지 반대한 사람이다. 정조가 서신 왕래 등으로 정치적 유대 관계를 깊게 맺었던 영의정 심환지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게 만들고, 자신의 세손 지위를 늘 위태롭게 했던 노론의 벽파다. 세종과 정조는 계몽군주, 개혁군주로서의 콘텐츠는 각기 달라도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형안은 같았던 것이다.

이같이 상반되면서도 공통점이 있는 두 임금의 일깨움이 왕조시대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지금의 이 시대에 비유가 걸맞지 않는다면, 현대사에서 찾아보는 존경된 지도자가 하필이면 호치민인 것을 의아하게 여길지 몰라도 사실이다. 민중의 순수한 지도자상이 이념 문제를 떠나 감명을 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1969년 79세를 일기로 사망한 베트남 민주공화국 주석 호치민은 평생 동안 인민 대중과 똑같이 검소하게 먹고 입고 쓰던 유품이 호치민박물관에 보존돼 아직도 추앙을 받고 있다. 베트공의 물불을 가리지 않은 항전은 이념 때문이 아니다. 진실로 인민 대중과 함께하는 자도자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다고 여긴 충성심이, 부패한 사이공 정부를 붕괴시킨 것이다.

제2차대전 전후 ‘위대한 프랑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 이를 성공시킨 드골은 1969년 대통령 자리에서 하야한 뒤 고향 옛집에서 동네 어린애들 할아버지 노릇을 하다가 죽으면서 유언에 따라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참된 국민의 지도자상은 뭣인가, 지위에 사심이 없는 무소유의 경지다. 예컨대 전 대통령 노무현은 민중의 지도자가 되기에 노력은 했으나, 사심이 그를 망쳤다. 대통령 재직 시의 공과가 그의 신념이라면 성패 간에 허물을 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퇴임 후의 봉하마을 대저택이나 천문학적 수치의 돈이 건네진 박연차 스캔들은 민중의 지도자상이 아니다. 그만이 아니다. 민중을 팔아 민중 위에 군림하면서 민중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이념귀족’이 쌔고 쌘 현실은 모순의 극치다.

현직 대통령 이명박은 재산 300억원을 장학재단 기금으로 사회에 내놓고도 좋은 소릴 못 듣는다. 그 연유가 어디에 있든 사심이 없는 것은 객관적으로 부인하기 어렵다. ‘MB의 오만과 독선을 응징한다’고 한다. 자신의 경륜과 신념을 펴기 위해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면, 노무현의 오만과 독선이나 이명박의 오만과 독선이나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에 있다.

글머리로 돌아가 이 시대 지도자의 모델은 세종 같은 계몽군주이기보다는 정조 같은 개혁군주라야 한다. 치세가 아니고 난세이기 때문이다. 다중의 의견을 듣는 것과 다중의 의견에 흔들리는 것은 구별된다. 대통령은 다중의 구심점이 돼야 하는 지도자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불만스런 게 적잖다. 세종과 정조와 같은 포용력이 없는 것은 불만 중 하나다. 그러나 호치민이나 드골 같은 도덕성을 잊지 않을 요량이면, 정조 스타일의 개혁을 밀고 나가야 한다. 치세의 세종은 신하들의 말을 많이 따랐지만, 난세의 정조는 신하들을 이끄는 치국을 폈다.

대통령은 고독할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6·2 지방선거를 크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진정한 평가는 재임 중이 아니고 퇴임 후 내려진다. 멀리 보고, 크게 보는 안목이 국정의 요체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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