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1운동 독립운동가 판결문으로 본 일제 탄압] “조선독립만세” 외친 27명 억울한 옥살이
[인천 3•1운동 독립운동가 판결문으로 본 일제 탄압] “조선독립만세” 외친 27명 억울한 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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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보안법 위반 혐의 적용 ‘과도한 형량’ 선고
상고 6명 “조선민족으로 정의 당연… 범죄 아니다”
▲ 102년전 오늘. 인천의 시민은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거리로 뛰쳐나와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31독립만세운동을 했다. 일본은 평화로운 31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과도하게 보안법 혐의를 적용, 인천의 독립운동가 11명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사진은 김삼수 지사, 김명진 지사, 최봉학 지사, 문무현 지사, 임갑득 지사, 조명원 지사, 조종서 지사, 염성우 지사, 유학용 지사, 심혁성 지사, 유봉진 지사. (왼쪽부터 시계방향)  인천시 제공
102년전 오늘. 인천의 시민은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거리로 뛰쳐나와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31독립만세운동을 했다. 일본은 평화로운 31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과도하게 보안법 혐의를 적용, 인천의 독립운동가 11명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사진은 김삼수 지사, 김명진 지사, 최봉학 지사, 문무현 지사, 임갑득 지사, 조명원 지사, 조종서 지사, 염성우 지사, 유학용 지사, 심혁성 지사, 유봉진 지사. (왼쪽부터 시계방향) 인천시 제공

“만세를 부른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조선인으로 당연한 일이거늘….”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독립운동가 조종서 지사. 그는 일제의 탄압 속에 받아든 판결에 불복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현 인천 중구 영종국제도시가 있는 용유동(당시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에서 비밀 항일단체인 혈성단을 조직했던 그는 조선의 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범죄가 아니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102년 전 오늘, 인천 시민은 31독립만세 운동을 했다. 태극기를 들고 평화로운 시위를 하던 이들에게 일제는 폭력적인 진압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만행은 일제의 재판 과정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립운동가에게 과도하게 보안법 혐의를 적용해 과도한 형량을 선고했다. 이 같은 판결로 독립운동가 11명은 약 3천435일 동안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인천시는 지난해 이들을 ‘인천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들의 판결문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던 중 31운동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16명의 독립운동가를 추가로 찾아냈다. 이들까지 모두 27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억울함 속에 치러야 했던 옥고의 기간은 8천244일에 달한다.

 

■ “조선독립만세” 그 날의 함성에… 보안법 적용 남발

1920년 4월 8일 경성지방법원은 유학용 지사에게 징역 3월을 선고했다. 유학용 지사는 지난 1920년 3월 18일 인천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만세시위인 강화3·1운동을 이끈 삼촌(유희철 지사)의 권유로 3·1운동에 참여했다. 유학용 지사는 같은 해 5월 23일 만기 출소한다.

유학용 지사의 판결 기록에서는 그의 범죄사실을 ‘읍내시장에서 수백명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적용한 혐의는 ‘보안법 위반’이다.

국가기록원의 독립운동관련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유학용 지사처럼 인천의 3·1운동 과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독립운동가는 모두 27명이다. 재판부가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보안법 위반, 소요, 출판법 위반, 공문서 훼기, 집무집행방해, 주거침입, 절도, 전산법 위반 등 약 10가지다. 특히 재판부는 이 중 ‘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천의 모든 독립운동가에게 적용했다.

보안법은 형법의 기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 중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한다. 당시 보안법 제7조는 ‘정치적으로 불온한 언동 혹은 타인을 선동하고 교사 혹은 이용하거나 타인의 행동에 간섭해 치안을 방해한 자는 50대 이상의 태형, 10개월 이하의 금고 혹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어디까지가 불온한 언동인지는 불명확하다. 이런 특징은 고스란히 보안법 위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에 쓰인다.

김락기 인천문화재단 경영본부장은 “명확하지 않은 보안법의 특징은 일제가 인천의 독립운동가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으로 활용됐다”고 했다.

■ 식민통치 위협받자 높은 형량 선고

인천의 3·1운동 운동가 중 보안법의 최고 형량인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인물은 이담 지사와 김명진 지사 등 2명이다. 이담 지사는 1919년 3월 24일 이경응 계양면 서기의 집 벽과 대문을 부순 혐의를 받았다. 이담 지사는 3·1운동 과정에서 일제 순경의 칼에 맞아 순절한 이은선 지사를 애도하고자 모인 자리에 이경응이 보이지 않자 이 같은 행동을 했다.

또 김명진 지사는 지난 1919년 3월 8일 인천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 과정에서 학교 직원과 경찰서가 전화 통화를 해 학생을 감시하고 심한 취조를 하는 것을 막으려 전화 가공선을 절단했다.

인천의 3·1운동 독립운동가들은 한국의 독립과 관련한 직접적인 발언을 한 사람보다 식민통치의 대리자, 주재소 등 식민통치기관을 습격한 사람의 형량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 “조선민족의 정의감은 죄가 되지 않는다” 당당한 외침

실형을 선고받은 인천의 독립운동가 중 경성고등법원(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이들은 6명이다. 이들의 상고취의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문구는 ‘조선민족으로 정의, 인도에 근거한 의사발동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인천에서 각 점포에 3·1운동에 동조하며 철시(가게 문을 닫는 것)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낸 김삼수 지사는 상고 취의서에서 “정의와 인도를 위해서는 도끼도 두려움에 충분치 않다”고 했다.

이어 “당당하게 정의인도를 위해 행동한 우리들은 정의와 인도에 위배하는 대일본제국 사법권 내의 절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3·1절을 맞아 인천의 독립운동가들의 판결문을 분석하며 그 속에서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수백, 수천의 독립운동가를 만났다.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도 독립을 위해 거리로 뛰어나간 이들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승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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