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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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천상병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 꽃
뭇 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
이 나그네는 바람 함께
정처 없이 목적 없이 천천히


보면 볼수록 허허한 모습
통틀어 무게 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상공 수놓네.


《천상병 전집》, 평민사, 2018

 

내려놓는 삶의 경지

아이들은 흘러가는 구름에서 숨어 있는 뭔가를 하나씩 찾아낸다. 누구는 강아지를 찾아내고, 누구는 선생님의 회초리를 찾아내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만두라며 입맛을 다신다. 그렇게 숨겨진 보물들을 하나씩 찾아내 자기 것이 맞다고 서로 우긴다. 그러는 사이 구름은 시험문제를 내듯이 또다시 형체를 바꿔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구름이 낸 문제를 맞히려고 고개가 아플 정도로 하늘을 바라보던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프랑스의 과학 철학자이자 문학 비평가였던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공기와 꿈>이라는 멋진 책에서 다음같이 말했다. “길게 뻗치는 구름을 향해 ‘커다란 코끼리야! 코를 길게 해보렴.’하고 아이가 말하면 구름은 복종하지 않는가.” 참으로 멋진 통찰이다. 어린 시절 내가 봤던 구름은 나의 소원을 여지없이 들어주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였다. 그랬던 구름이 어느 때부터 시들해졌다.

하늘 위 구름보다 눈앞의 어떤 것들에 치이고 시달려 늘 발밑을 보며 걷는 게 어른의 삶인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문득 올려다본 하늘의 구름이 예전처럼 코끼리야, 하면 코끼리가 되던 그때의 구름일 수 있을까? 천상병 시인의 시 〈구름〉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천상병의 구름은 “하늘의 빈털터리 꽃”이고,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다. 그의 구름은 가난하면서도 자유로워 보인다. 정처 없고 쓸쓸해 보이지만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세속의 탁한 경계를 넘어선 정신의 맑은 구름이다. 유유하고, 허허하고, 가진 것 다 내려놓은 저 가벼운 구름의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버려야 할까.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빨리 내달리려 하는 게 도시의 삶이다. 버리기보다는 소유에 급급한 게 우리의 일상이다. 그렇다고 그런 일상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버리는 건 어렵지만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한다.

목적 없는 삶은 자유롭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 그 자체를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갈 곳만 가고 불필요한 곳은 가지 않는 것이 목적 없는 삶의 자유다. 그것을 천상병 시인은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로서의 구름에 비유한다. 가야 할 곳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결단이 바로 삶의 고귀함일 것이다. 고귀란 드물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구름을 보며 보물을 찾듯이 찾다 보면 자기만큼의 순수로 내비쳐질 것이라 믿는다. 다시 고개를 들고 하늘의 구름을 봐야겠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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