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매교동 과거와 오늘 이야기…“소중한 추억, 역사 자료로 활용”
수원 매교동 과거와 오늘 이야기…“소중한 추억, 역사 자료로 활용”
  •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 입력   2020. 11. 23   오후 7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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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교동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편찬위원회. 수원시 매교동 제공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행차할 때 경복궁에서 수원천을 건너 현륭원에 도달하기까지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 필수 관문이 있었다. 현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일대다.

수원부가 수원군, 수원읍, 수원시로 승격하는 약 300여년간 ‘행정 1번지’였던 이 동네에는 수원법원과 검찰청(1952~1956년), 수원시청(1956~1987년) 등 각종 행정기관이 모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매산로(매산동, 교동) 인쇄 골목이 1930~1970년대 호황을 누리면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 매교동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편찬위원회를 구성,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수원시 매교동 제공
매교동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편찬위원회를 구성,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수원시 매교동 제공

김순옥 할머니(77)의 부모님은 50년 전 팔달산 아래에서 국밥집을 운영했다. 매교동에 소문난 맛집이었다. 옛 기억을 회상하던 김 할머니는 “매일 새벽부터 동네 사람이 어찌나 많이 몰려들든지 백날천날 설농탕 끓이느라 곱던 손이 주름투성이가 됐어”라고 웃음과 함께 손등을 내보였다.

1979년 6월18일 매산로 일대. 수원박물관 제공

그가 생각하는 매산동은 수원지역의 번화가 중 번화가로 항상 사람이 북적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구도심화 되면서 아이들 웃음소리도, 가게를 찾는 손님의 발길도 줄었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철물점도 화방도 가득했는데 이젠 다 사라지고 주민들도 하나 둘 동네를 떠났지”라며 “나는 매교동이 불편한 게 없어서 떠날 생각 없어”라고 전했다.

왼쪽부터) 1970년대 매교동 인쇄소 내부. 수원박물관 제공
왼쪽부터) 1970년대 매교동 인쇄소 내부. 1979년 6월22일 매교동 골목. 수원박물관 제공

‘불편한 게 없는’ 매교동은 1980년대 도시확장계획이 확정되면서 서서히 원주민이 빠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대부분이 상업지역으로 분류됐으며 곳곳에서 기존 동네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재개발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미래의 매교동은 새롭게 들어서는 아파트들과 이곳에 입주할 외지인이 늘어날 것으로 점쳐진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매교동 모습을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의기투합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매교동 역사를 추억하고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지난 4월 소개 책자 ‘매교동 이야기: 재개발 그 사이에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주민 13명을 주축으로 한 편찬위원회는 오산, 화성 등을 다니며 매교동 자료를 수집했다.

왼쪽부터) 1970년대 매교동 인쇄소에서 근무 중인 조판공 모습. 1973년 2월 매교동 모습. 수원박물관 제공

그 결과 지난달 29일 매교동 이야기가 탄생, 이달 9일부터 매교동행정복지센터에 비치(총 1천 부)됐다. 김종기 편찬위원장 겸 매교동 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67)은 “소중한 기억을 모아 만든 책자를 통해 자랑스러운 매교동의 역사와 전통이 이어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며 “따뜻한 이웃의 이야기와 일상의 흔적을 지킬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 활용되길 바라며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1973년 8월8일 매교동 이춘택병원 뒷골목. 1974년 3월13일 매교동새마을주민총회. 수원박물관 제공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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