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노인 교통사고 사상자 연간 9천명…아스팔트 위 그림뿐인 ‘노인보호구역’
경기도 노인 교통사고 사상자 연간 9천명…아스팔트 위 그림뿐인 ‘노인보호구역’
  • 장희준 기자 junh@kyeonggi.com
  • 입력   2020. 10. 22   오후 6 : 40
  •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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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수원시 영통동 어린이보호구역은 단속카메라와 안전펜스 등이 설치돼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 경기지역에 설치된 노인보호구역 중 상당수가 어린이보호구역에 비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수원시 율전동 한 노인보호구역이 노면표시가 벗겨진채 차량들이 과속을 일삼고 있다.김시범·조주현기자
(왼쪽) 수원시 영통동 어린이보호구역은 단속카메라와 안전펜스 등이 설치돼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 경기지역에 설치된 노인보호구역 중 상당수가 어린이보호구역에 비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수원시 율전동 한 노인보호구역이 노면표시가 벗겨진채 차량들이 과속을 일삼고 있다. 김시범·조주현기자

노인들이 어린이보다 교통사고에 더욱 취약하지만 정작 노인보호구역은 제 구실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오전 10시께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의 노인보호구역은 도로 위에 시속 50㎞ 제한을 알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을 뿐 CCTV, 과속경보시스템 등의 별도 안전장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옆에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이 있어 이곳을 통행하는 노인이 많았지만, 왕복 6차선 도로 위 차량들은 노인보호구역이 끝나는 지점에서 단속카메라가 나오기 전까지 빠른 속도로 주행을 이어갔다.

오후 1시께 찾은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일대 노인보호구역도 단속카메라는 없었다. 규정 속도마저 시속 60㎞로 사실상 속도 제한이 없는 상태였다. 한 차량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밤밭노인복지관 방면으로 우회전했다가 뒤늦게 길을 건너는 노인을 발견하고 굉음을 내며 브레이크를 밟기도 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은 보행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뀔 때까지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한 상황이었다.

경기도 내 교통사고 발생 및 보호구역 현황
경기도 내 교통사고 발생 및 보호구역 현황

이날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의 자료를 재구성한 결과 지난해 경기도 내 14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사상자는 4천359명(사망 1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도내 65세 이상 노인 교통사고 사상자는 8천916명(사망 222명)으로 어린이 사상자의 2배에 달한다. 지난 2018년 8천553명(사망 246명)에 이어 연간 9천명에 달하는 노인들이 경기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셈이다.

앞서 미비한 안전 실태를 보인 고양시와 수원시는 각각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와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이다. 고양시에선 지난해 노인 19명이 교통사고로 숨졌고 수원시에선 698명이 다쳤다.

그러나 노인보호구역은 그 수와 안전장비부터 턱없이 부족하다. 도내 어린이보호구역은 3천828곳인 반면 노인보호구역은 267곳이다. 각 구역에 설치된 CCTV도 어린이보호구역은 443대인데 노인보호구역은 15대에 불과하다. 또 관련법이 개정되며 시속 30㎞로 강력히 규제하는 어린이보호구역과 달리 대다수 노인보호구역은 교통 원활 등을 이유로 시속 50~60㎞의 무의미한 제한을 걸고 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노인보호구역 주행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지만, 강제가 아닌 탓에 실효성이 떨어진다.

22일 오후 수원시 율전동 밤밭노인복지관 앞 노인보호구역이 노면표시가 지워지고 운행 차량들이 과속을 일삼는 등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김시범기자
22일 오후 수원시 율전동 밤밭노인복지관 앞 노인보호구역이 노면표시가 지워지고 운행 차량들이 과속을 일삼는 등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김시범기자

정책적으로도 노인보호구역은 외면받는다. 행정안전부의 내년 교통약자 안전사업 예산을 보면 총 2천165억8천만원 중 91.6%에 달하는 1천983억3천만원이 어린이보호구역 개선에 집중됐다. 노인보호구역에 배정된 예산은 고작 60억원(2.8%)이다. 전년 대비로 봐도 어린이보호구역 예산은 708억7천900만원이 증가했지만, 노인보호구역 예산은 오히려 200만원이 감소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노인은 보행속도가 느릴 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며 “노인 보행자가 많은 지역의 횡단보도 길이를 줄인다거나 해당 구간에 진입하기 전부터 도로폭을 줄여 운전자들이 교통약자 배려구간을 인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자료를 재구성한 2019년 경기지역 연령별ㆍ지역별 교통사고 사상자 현황. 장희준기자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자료를 재구성한 2019년 경기지역 연령별ㆍ지역별 교통사고 사상자 현황.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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