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선처 받을 일인가
[지지대] 선처 받을 일인가
  • 박정임 미디어본부장 bakha@kyeonggi.com
  • 입력   2020. 06. 16   오후 8 : 44
  • 1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영조 38년 윤 5월13일, 양력으로 7월이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다.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죽음을 맞은 사도세자는 영조가 마흔두 살에서야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역사는 영조를 비정한 아버지, 사도를 비운의 세자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광증과 그로 말미암은 살인 행각이 부자간 갈등에서 비롯된 후천적 요인이라 해도 용서받기 어렵다. 오죽하면 생모인 영빈 이씨가 나서서 남편 영조에게 아들의 잘못을 고하며 선처를 바랐을까.

▶2015년 2월2일, 검찰이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해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개인적 권위로 공적 운송수단을 통제해 안전을 위협했다는 게 이유다. 언론을 통한 사과와 반성은 비난 여론에 못 이겨 한 것일 뿐 진지한 자성의 결과를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조 전 부사장은 ‘어떤 결과도 달게 받겠다’면서도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두 아들에게 한시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모정’을 무기로 내밀었지만 ‘슈퍼 갑질’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유명 연예인을 포함한 인플루언서들이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견디다 못해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악성 댓글을 달아온 이들을 고소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그 어떠한 주장과 변명에 상관없이 선처는 없을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악성 댓글 탓인 심적 스트레스에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악성 글은 한 사람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불안감을 남긴다. 이유를 불문하고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연예인들의 처지가 이해가 간다.

▶지난 5월13일, 울산의 한 주택에서 60대 부부가 다투던 중 남편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내는 경찰에서 남편이 목을 졸라 이에 대항하려 둔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조사 과정에서 당시 신고를 했던 아들도 공범으로 확인돼 어머니와 함께 구속됐다. 이들 모자는 오랜 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려 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웃 주민들은 모자의 형편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가정폭력이 끔찍한 범죄를 낳게 한 것이니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찰이 최근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는 계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3일 오전 경남 창녕경찰서로 연행돼 약 9시간30분 동안 조사를 받은 계부는 혐의를 일부 인정했지만, 선처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아동의 말을 빌자면 달궈진 프라이팬으로 손가락을 지지고 쇠 파이프로 폭행하는 등 잔혹한 학대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을 것은 두려웠나 보다. 선처(善處)는 적절하게 잘 처리해 주기를 부탁할 때 쓰는 말이다. 비정한 아버지가 바라서는 안 된다. 계부(繼父)도 아버지다.

박정임 미디어본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