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코로나 비포 앤드 애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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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실감하지 못하거나 인정하기 싫어 애써 외면하는 것이 있다. 조금만 더 견뎌내면 찬란해서 더 잔인한 이 계절이 끝나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바이러스가 소멸된다 해도, 이제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완벽히 돌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4개월째, 짧은 시차를 두고 전 대륙을 덮친 ‘공공의 적’은 개인, 사회, 국가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두 달이 넘게 기상 알람을 긴급재단문자가 대신하고, 핸드폰으로 뉴스 속보를 확인하며 잠에서 깬다. 처음으로 쓰게 되고 알게 된 단어인 ‘팬데믹’, ‘비말감염’, ‘자가격리’ 등이 일상어가 되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이 결정된 ‘온라인 개학’은 그 여파가 어디까지일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마스크가 외출 필수품이 되고, 하루에도 몇 십 번 손을 씻는 일들이 원래부터 생활의 일부인 듯 익숙해졌다. 그뿐인가, 올림픽이 사상 처음으로 연기되고 전 세계 189개 나라를 무비자로 갈 수 있었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권은 이제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선진국들이 칭찬하는 방역시스템과 높은 시민의식을 지닌 우리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모든 게 앞서나갔던 그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건 낯설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직업, 운동, 사교, 쇼핑, 건강관리, 자녀교육, 가족 돌보기 등 삶의 모든 기반들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신체접촉의 정도도 한 단계씩 낮아져 포옹은 가족만, 악수는 정말 친한 사람만 하는 것이 되고, 모르는 사람과는 가까이에서 대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파도 출근해야 한다’라는 문화는 ‘아프면 쉰다’는 문화로 바뀌게 될 것이며, 재택근무와 서면보고를 더 많이 활용하게 되고, 화상회의, 온라인 강의, 배달 음식이 생활화되어 사회적 거리두기는 ‘새로운 일상’이 아니라 일상으로 완전히 자리 잡을 것이다.

올해 초, 필자가 이 지면을 통해 올 한해 각종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등 풍성한 미술계를 이야기하며 들떴던 기억이 아련하다. 지금 미술관과 박물관 등의 전시공간들은 철통 같은 방역으로 문을 걸어 잠갔고,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는 많은 것을 힘들게 했지만, 특히, 생동감이 관람객과 직결되는 예술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 난리통에 문화가 무슨 말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어려운 여건에서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것이 문화예술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화 ‘기생충’의 수상 소식에 온 국민이 환호하던 순간을 기억해 보면, 예술작품 하나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회활동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온라인을 통한 관계와 소통에 익숙해져 있고, 현장을 직접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문화 혜택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세계 유수 공연이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고, 수십만 원 하는 팝스타들의 콘서트도 소셜미디어에서 열리고 있다. 루브르박물관이 인터넷공간으로 전시장을 옮겨왔고, 아트바젤 홍콩은 온라인 뷰잉룸으로 환복했다. 국내 국공립미술관 또한 학예사들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하는 온라인 전시 투어로 새로운 전달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서, 도리어 전보다 문화예술의 문턱이 낮아지고 관객과 더욱 친근하게 대면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공동체를 통한 시도와 경험들은 코로나 이후 문화의 또 다른 체험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안착하게 되고 더욱 널리 교류할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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