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1978년 손재식 경기도지사
[천자춘추] 1978년 손재식 경기도지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78년 봄, 공무원 365일 근무한 어느 날의 기억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엘리트 행정가인 손재식 도지사(1976년 10월~1980년 1월). 요즘도 재난 방송과 뉴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노랑 민방위복을 곱게 다려입는 손재식 도지사가 한해대책 현장 점검에 나섰다. 화성군청과 비봉면사무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는 장면을 보여 드려야 한단다. 화성시 매송면~비봉면~남양면~마도면~송산면~서신면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비봉면에서는 오전 양수작업을 중단했다. 하천의 모래를 파내고 건수가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도지사님이 오시면 힘차게 퍼 올리겠단다. 중고생을 동원해 양동이로 물을 날라 가뭄에 타들어가는 못자리에 뿌렸다. 당시 정부는 논농사가 곧 ‘안보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 했다.

도지사가 우리 지역을 통과할 예정시간이 임박해지자 공무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도청에서 도지사 차가 출발하면 오산에 있었던 화성군청으로 알려주고 군청 농산과에서는 면사무소로 연락하기로 했다. 면사무소 공무원이 부락당 1대뿐인 이장님집 교환전화를 통해 소식을 듣고 오토바이로 현장에 달려왔다. 당시에는 ‘삐삐’조차 없었다. 경기1가1000번(도지사) 차량의 도착 예상시간 오차는 아마도 30분정도. 핸드폰이 없는 1970년대 후반의 이야기다.

오랜 기다림 후에 도지사 차가 저기 온다는 ‘오토바이 擺撥(파발)’을 받고 5마력 양수기를 힘차게 돌렸다. 양수기 물줄기가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하늘로 향해 쏘아댔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한 도지사님과 수행팀은 양수기가 뿜어내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는다. 군청에서 지프차를 타고 따라온 사진사는 연신 카메라 셔텨를 터트린다.

화려한 현장의 무대 뒷편에서 움직이는 촬영 스텝처럼 면직원 공무원들은 애간장이 녹는다. 개울바닥 저 아래의 물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콰이쾅의 다리’에서 교량 폭파직전에 강물이 줄어들면서 뇌관에 연결된 전선이 드러나는 그 순간과 겹치는 데자뷰(Deja-vu). 보초병과 주인공 장교가 대립하는 맘 졸이는 장면이다. 16대 손재식 경기도지사님을 그렇게 만났다. 존경받는 존경하는 도지사님. 사무관 시절에 도시락 들고 출근했다는 분이다.

세월이 흘러 민선 초임 29대 이인제 도지사님, 30대 임창렬, 31대 손학규, 32~33 김문수, 34대 남경필 그리고 35대 이재명 도지사님의 경기도청과 도 공기관에서 일했다. 예산편성하며 밤도 새워보고 새벽 5시에 서울 복판으로 차를 몰아 도지사님 행사장을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손재식 도지사님때 공무원은 사명감 높은 공무원(公務員)이었다. 그때는 19살이라 어리고 판단력, 비판능력이 부족했었지만.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연예 24시